최기채 목사 시집 10

위대한 정복자

당신은 위대한 정복자였습니다. 수억의 뇌세포를 어느 사이엔가 다 점령을 당해버리고서도 불행을 느끼지 못하는 나의 타는 심장을 송두리째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정복 당한자 답지 않게 질투 많은 눈을 피하여 두 주인을 섬기느라 바쁘답니다 당신께서 모르는 척 찾아 주실 때마다 푸닥진 양심의 한구석에서 가시나무는 착실히 자라 그만 바쁜 일손을 멈추고 당신만을 섬기도록 찔러주지만 두꺼워진 마음 가죽이 아픈 줄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당신으로부터 해방이 되는 날에는 아무리 두꺼워진 마음가죽 쇠붙이 심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만은 알고있습니다.

겨울의 노래

나는 겨울이 좋더라 겨울은 모든 산천이 벗을 것은 다 벗어버리고 제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계절이기에 좋더라 일찍 떠나버릴 초조한 봄 보다는 차라리 봄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겨울이 좋더라 겨울은 밤이 길어 좋더라 조용하고 아늑한 방 책상머리에 앉아있는 기인 겨울이 좋더라 따뜻하고 음푹한 아랫목에 이불을 둘러쓰고 조그만 상위에 원고지 몇장 올려 놓고 앉았으면 연탄 한 장도 없어 군불도 때지 못한 추운 방에서 웅크리고 앉아 손을 호호 불면서 공부하던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겨울이 좋더라 아무도 오지 않은 겨울이 좋더라 모든 생명 다 잠재우고 혼자만 있게 하는 겨울이 좋더라 메아리 없는 말을 혼자서 지껄이게 놓아두는 겨울 회답 없는 편지를 쓰게 하는 겨울이 좋더라 그분만을 마음껏 생각하고 마음껏 상상하고 그..

영혼의 미궁

주님 지금 미궁에 빠진 내 영혼이 하늘을 우러러 손과 마음을 아울러 높이 들고 이렇게 절규하고 있습니다. 숱한 영혼을 무참히 삼켜버린 위장된 소돔성을 따뜻한 품 안전한 피난처 인양 환각의 향연에 취한 어리석음이 잠에서 깨는 순간순간 한발을 빼고 나면 또 한발은 더 깊이 빠져들고 한손을 치어들면 또 한손이 피 묻히는 멀고 피곤한 시궁창에서 이렇게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주님 손도 발도 다 저어봐도 뒤범벅이 되어가는 얼굴에 숨통까지 막힐 뻔한 지옥의 바다에서 사력을 다하여 투쟁한 지 벌써 몇몇 해입니까? 환희의 탈출을 노래하며 광명의 대로를 활보하는가 하면 어느 사이엔가 다시 시궁창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유혹의 포로 그래도 숨통만은 치어들고 버티는 내 영혼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바위의 정절

주님! 산 같은 파도가 태풍에 밀려오고 있습니다 작은 어선들이 파도에 쫓기고 있습니다 서로 쫓고 쫓기는 현장에서 파도와 싸우는 저 어부를 배우게 하시고 작은 파도가 나를 쫓을 때도 놀라지 않게 하시고 더 큰 파도를 기다리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더 큰 풍랑이 첩첩이 밀려와도 내 생명을 요구하는 때에도 풍랑을 밟고 거니시던 당신을 생각게 하시고 성난 파도 위에서도 평안히 주무시던 당신을 배우게 하소서 바다를 꾸짖던 당신을 깨우게 하소서 주님! 저 파도가 산산히 부서질 때에 내 영도 함께 깨어지게 하시고 파도에 얻어맞고 세파에 시달린 조약돌처럼 내 영혼의 모서리도 저 파도에 닳아지게 하시며 성난 파도가 높이 뛸 때에 나의 영도 덩달아 뛰지 않게 하소서 주님! 질투심 많은 저 파도가 우리가 탄 방주를 마구..

하나님 전상서

주님! 내가 당신을 향하여 무릎을 꿇을 때 영혼의 무릎도 함께 꿇도록 하시고 당신을 향하여 눈을 감을 때에는 영혼의 눈이 뜨이게 하소서 주님! 내가 당신을 향하여 눈을 들기 전에 내 마음을 들여다 보게 하시고 내가 빋을 축복을 바라보기 전에 이미 받은 축복을 볼 줄 알게 하소서 주님! 내가 예복을 입을 때에는 양심까지 가리우는 예복을 입지 않게 하소서 제단에 설 때마다 인기있는 배우가 되지 않게하소서 주님! 내가 설교할 때에 잘하려는 욕심보다 진실을 전하게하시며 사람들에게 칭찬듣는 자보다는 당신에게 칭찬 듣는 자가 되게하소서 주님! 제가 목회할 때에 나도 실천하지 못할 무거운 멍애를 매우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양들과 함께 멍애를 같이 지고가는 목자가 되게하소서 주님 내가 살아갈 때에 서기관이나 바리새..

하늘을 우러러

주님! 나침반의 바늘이 북쪽만 가르키듯 내영혼의 바늘도 하늘만 가리키게 하시고 기인 목을 늘인 해바라기의 얼굴이 해를 따라 돌아가듯 내 영혼의 얼굴도 당신만 우러러 돌게 하소서 주님!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 못하고 가슴만 치던 세리처럼 내 영혼도 하늘을 우러러 가슴치게 하소서 주님! 롯의 아내처럼 뒤돌아 보고픈 때라도 내 영혼의 목을 고착시켜 앞만 향해 가게 하시고 모든 사람이 나를 향해 돌을 집어 들 때에는 오직 하늘만 우러러 보게 하소서 주님! 삶에 지치고 피곤한 로뎀나무 아래서도 나의 영혼은 하늘을 우러러 보게 하시고 나의 창고와 호주머니가 텅 빈 때에는 하늘의 창고를 우러러 보게 하소서

처음 사랑

주님! 나는 나를 보고 있습니다 뚫어져라 보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거울에 비취는 내 모습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탄식을 합니다. 머리에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고 야위어버린 볼에 주름 잡힌 이마 빛 잃은 눈동자 모두가 다 처음 모습이랑은 한가지도 없이 다 잃어버렸습니다 아닙니다. 그 보다 나는 더 큰 것을 잃었습니다 그 보다 더 많은 것을 송두리째 잃었습니다 처음 사랑을 잃었습니다 처음 행위를 잃었습니다 처음 믿음도, 처음 열심도 처음 결심도, 처음 서원도, 맹세도 다 잃어 버렸습니다 아무 것도 없고 빈 껍질이 되어 버렸습니다 주님! 나는 지금 마음의 폭이 너무 넓어지고 있습니다 눈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입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나의 문도 넓어지고, 가는 길도 너무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귀는 점점 좁아..

지금 닭이 울고 있습니다.

주님 지금 막 고요를 깨우는 목청이 들립니다. 밤을 깨우는 새벽의 사자인가 봅니다. 아무래도 무엇인가 재촉하는 소리만 같습니다. 날마다 울어서인지 속이 상해서인지 쉬인 목소리도 같습니다. 그 안타까운 울음소리를 듣는 이 순간 더이상 잠들 수 없어서 게으르고 무딘 마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습니다. 주님 지금 닭이 울고있습니다 오늘따라 목을 놓아 울어대고 있습니다. 우는 소리뿐 아니라 톡, 톡 가슴치는 소리까지 들립니다 아무도 따라울지 않으니 더욱 슬픈가 봅니다 주님께서 보내신 사자가 무엇을 재촉하면서 통곡하는 줄을 나만이 알아들을 수 있기에 발걸음 멈추고 듣고 섰습니다 나 더이상 걸을 수가 없어 이렇게 서서 흐느끼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베드로가 닭 우는 소리에 통곡했는지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