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구원의 선택은 누구는 선택이 되고 누구는 안되고가 아니고,
인간 모두를 선택하신 것으로 봐야 한다.
그래야 성경에서 “누구든지”와 서로 양립이 된다.
즉 선택의 대상은 개개인으로 하신 것이 아니다.
항상 “너희들”이라는 복수로 쓰신다.
다시 말하면 불특정 다수가 된다.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 전부를 하셨으나 그것을 받은 자들은 모두가 아니다.
인간의 믿음이 구원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만들어 내셨다. 그것을 인간에게 제안하셨다.
“나는 인간 모두가 구원에 이르기를 원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선택이 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면 안된다.
이 죽음은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의 왕국 전체를 위한 거대한 진리의 기둥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공의가 만들어낸 죄에 대한 속죄와 그 속죄에 대한 댓가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편파적이면 안된다.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는 공의이다.
결코 ‘불가항력적인 구원의 선택’이 기준이 될 수 없다.
성경에 언급도 되지 않는 ‘아담은 스스로 선택이 가능하고,
그 후 인간은 자신의 선택을 할 수 없다’는 말도 안되는 인간의 생각을 성경에 집어 넣을 수 없다.
하나님의 주권은 ‘믿음과 거부의 법’을 만드셨다.
왜 인간의 선택을 배제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라 생각하는가?
성경에 명백하게 나와 있는 구절을 애써 비틀며 부인하는 일은 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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