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정동수목사의 마태복음강해 >>
1-14, 잔치로 초대받은 자들의 비유
아들과 아들의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자들
일반적인 해석: 2-7,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멸망
8-10, 여기저기에서 온 손님들이 결혼식에 가득하다.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서 왕의 결혼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신부이다.
초대받은 자들(guests 복수)은 신부가 아니다. 신부는 하나밖에 없고 신부는 초대받지 않는다.
또한 11-13절의 문제: 결혼식에 왔는데 옷이 없어서 추방당하는 사람
알미니안 주의에서는 이런 사람을 가리켜 ‘구원을 잃은 자’라고 말한다.
Landmark Baptist들은 자기들만이 신부고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가족에 속했으나 신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도 틀린다. 이 사람은 지옥 불 속에 들어간다(13절).
가장 합리적인 해석은 이 부분이 21:22-46의 연장선상에 있는 비유 즉 이스라엘과 상관있는 비유로 보는 것이다. 하늘의 왕국 이야기지 교회 이야기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계속해서 구약 시대에 대언자들을 보냈으나 이스라엘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들이 죽었으나(21:39) 지금은 살아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재림 전의 어린양의 혼인 만찬과 연결해서 볼 사건이며 특히 이스라엘과 관련된 어떤 사건이다.
3-7절: 이스라엘의 불순종, AD 70년의 예루살렘 멸망
8-15절은 교회 시대를 뛰어넘어 하늘의 왕국이 이루어지기 전이 환난기의 끝부분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린양의 혼인 만찬이 하늘에서 있고 어느 면에서 1000년 왕국은 결혼 잔치의 기간
여기의 손님들은 환난기의 유대인들, 그리스도의 신부가 아니다.
그러면 결혼식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누구인가?
그 당시 결혼에서 동방의 관례; 누구나 혼주가 주는 예복을 입어야만 결혼식에 들어갈 수 있다.
예복이 없다는 것은 그것을 거부하였다는 뜻이다.
믿음으로 끝까지 견디지 못한 유대인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봄이 바람직하다(마24:13).
다시 말해 9-10절은 환난기에 민족적으로 이스라엘을 부르는 것이고
11-14절은 이스라엘이 개인적으로 판단을 받는 것으로 보면 좋을 것이다.
영적인 적용: 복음은 하늘 잔치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의 잔치에 사람들을 부르신다.
메시지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5).
메시지를 들고 가는 사람들을 멸시하고 죽이는 자들이 있다(6).
그런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7).
복음의 메시지: 누구든지 혼인 잔치에 오라.
부름 받은 자는 많으나 선정된 자는 적다.
누구에게나 복음이 들어간다. 그런데 자기 의복을 입은 사람은 안 된다. 우리의 의는 다 누더기와 같다.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동일한 의의 옷을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