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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70인역」
먼저 「70인역」에 대한 기존의 추측부터 정의해 보도록 하자.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공식적인 그리스어 번역본을 만들고자 한 계획이 「아리스테아스의 편지」(The Letter of Aristeas)라 불리는 한 고문서에 드러나 있는데, 이 편지에 따르면 이 그리스어 번역본이 유다인들의 공식 성경으로 받아들여지고 히브리어 성경을 대체할 만큼 권위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추측컨대 이 번역 작업에 참여한 72인의 유다인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에서 각각 6명씩 선별되었을 것이다.
이 작업이 이루어진 가상의 장소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이며, 번역의 추측 연대는 대략 주전 250년 경인데, 이 시기는 주전 397년 구약 성경의 마감 시기와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인 주전 4-5년 경 사이에 있었던 약 400년간의 침묵기 중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번역본은 「셉튜아진트」(Septuagint), 혹은 「70 장로들의 번역본」으로 알려져 왔으며, L=50, X=10, X=10, 합하면 70이라는 값을 지닌 로마(?) 숫자로 표시된다. 그런데 72명이 번역했다는 이 번역본을 왜 '칠십이인역'이라 부르지 않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소위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라 불리는 이 서신이 이 불가사의한 번역본 즉 「70인역」의 존재를 입증하는 유일한 증거물인데, 그 이유는 주전 250년 혹은 그 전후로 구약 성경 전체를 번역한 그리스어 필사본은 현재 확실하게 하나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유다 역사의 어디를 보아도 그런 일을 고려했다거나 진행시켰다는 기록은 전무한다.
이런 전설적인 문서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제조하라는 압력이 오자 학자들은 급히 주후 200년 경 오리겐의 「육단 성경」(헥사플라, Hexapla)을 그 증거로 제시하지만, 그것은 「70인역」이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때보다 거의 450년이나 지나서 기록된 것이며, 신약 성경이 완성된 후 100년도 훨씬 지나서 기록된 것이다.
오리겐의 「헥사플라」 두 번째 단은 오리겐 자신(결코 72인의 유다 학자의 번역이 아닌)이 그리스어로 구약을 번역한 것이며, 그밖에도 '벨과 용', '유디스서', '토비트서'와 같은 위조된 책들과 로마 카톨릭 교회만이 유일하게 권위를 인정하는 다른 외경들조차 포함시키고 있다.
70인역」의 허상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은 오리겐이 「헥사플라」의 제5단에다 직접 구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단지 70인역」을 복사한 것뿐이라고 주장하려 들 것인데, 이런 주장이 정당하지 않다. 만일 이 주장이 옳다면, 빈틈없는 유다 학자 72인이 외경들을 - 심지어 그것들이 쓰여지기도 전에 - 자기들의 작품 속에 첨가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엔 구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필사본이 하나도 없습니까? 있긴 하다. 하나의 작은 파편에 불과한 라일랜드의 파피루스 458번(the Ryland's Papyrus, #458)인데, B.C. 15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신명기 23-28장의 내용을 담고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제 「70인역」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을 고려해야 한다.
1. 하나님은 지금까지 이집트에서 나온 것을 인정한 적이 없다. 성경을 자세히 보기 바란다.
2. 모든 유다인들은 성경기록을 취급하는 공식 책임자가 신명기 17:18; 31:24,25,26과 말라기 2:7에서 입증되듯이 레위 지파임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나머지 11 지파의 어느 지파도 감히 그런 금지된 계획에 가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 성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다인들이 그들 주위의 이방 민족들과 거룩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유다인들은 할례, 안식일 성수, 깨끗케 하는 세세한 법조항들과 고유의 여러 가지 법들을 고유한 전통으로 삼아 왔다. 이와 더불어 히브리인들의 언어 계승의 열심에서도 이방 민족과 구별되고자 하는 동일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오늘날 중국이나 인도에 거주하는 유다인들은 여전히 자기 자녀들에게 히브리어 외에 다른 언어를 가르치는 것을 거부하고 있고, 이디오피아의 팔라샤 유다인들은 자기들이 유다인들의 언어를 이어받았다는 증거로서 히브리어를 간직하고자 힘쓰고 있으며 그 때문에 그 나라의 여타 부족들과 구별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즉 이방인을 개처럼 여기는 민족이 자기들의 유산인 히브리어를 버리면서까지 지극히 거룩한 재산인 성경을 이방인의 언어로 기꺼이 번역하려 했다는 학자들의 이러한 이야기는 모순된 것이다.
4.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 가운데 아무도 외경을 포함한 구약 성경을 인용한 적이 없다.
5.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자체에서 발견된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그 편지가 아리스테아스라는 이름의 사람이 썼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만약 아리스테아스가 실존 인물이라면, 그는 극복할 수 없는 두 가지 난관에 부딪혔을 것이다. 첫 번째 난제는, 각 지파에서 대표적인 학자 6명씩을 선발하기 위해 그가 어떻게 열 두 지파의 위치를 알아내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 포로생활을 통해 뿔뿔이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그 당시 12 지파의 경계선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이스라엘의 12 지파를 하나하나 구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끝으로 신학자들이 이같이 「70인역」의 존재를 부정하는, 반박할 수 없는 진실을 보고서도 이 거짓된 「70인역」을 숭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은 슬프지만 아주 단순한다. "히브리어를 배우는 것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히브리어에 대한 간단한 지식을 습득하는 데만도 수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될 뿐더러 학문연구 수단으로 충분히 정통하기까지는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 이와 비교할 때 그리스어에 대한 지식은 보다 쉽게 얻을 수 있고, 따라서 만일 그리스어로 된 구약의 공식 번역본이 존재했다면, 성경 비평가들은 히브리어로 성경을 연구해야 하는 고충을 겪지 않아도 되며, 단 번에 성경비평학 분야에서 그 영향력을 몇 배로 증가시킬 수 있다. 애석하게도, 이런 얄팍한 근거를 토대로 거짓된 「70인역」의 존재를 수용하는 것은 단지 교만과 탐욕에 기초를 둔 행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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