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4일 주일오전설교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인간의 의지가 만날 때
본문말씀: 요한복음 6장 35-47절
서론
기차가 다니는 레일을 생각해보자. 두 개의 레일 위로 기차가 움직이려면 두 레일은 같은 간격으로 평행을 이루어 있어야 한다. 두 레일은 절대 만나지 않는다. 그런데 두 레일을 우리의 눈에 보게 되면 가까이서는 그 레일이 서로 만나지 않고 같은 간격으로 쭉 뻗어 있는 것을 보게 되지만 멀리 뻗어있는 레일을 바라보면 두 레일이 마치 한 점에서 만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오늘 여러분에게 설명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인간의 의지라는 두 가지의 주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6장 35-47절은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인간의 의지에 대해 분명한 계시를 주는 부분으로 깊은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 부분을 완전하게 이해하기를 구하기는 힘들 것이다. 성경에서 분명하게 가르치지만 완전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들 중에는 삼위일체의 교리가 있고 오늘 우리가 보는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교리”이다. 그러나 이 교리를 이해하는 것은 분명히 우리에게 필요하며 특히 이 교리는 “성도의 구원의 영원한 안전”이 분명함을 가르친다. 즉, 만일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함으로써 그분을 여러분의 구주요 주님으로 영접하였다면, 여러분에게는 지금 영존하는 생명이 있다. 여러분은 그것을 절대 잃어버릴 수 없을 것이다.
요한복음 6장은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렇다면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먼저 35절을 보면 주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제시하신다.
요 6: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생명의 빵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주님은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제시하셨다. 빵은 생명을 보전하고 배고픔을 없애는 일을 한다. 주님은 분명하게 사람들에게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분께 오는” 것은 “그분을 믿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36절에서 주님은 슬픈 사실을 언급한다.
요 6: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도 나를 보았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0절을 보면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를 했다. 그런데 사실 그들은 육체 안으로 오신 하나님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 중이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들의 메시야로써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직접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눈으로 목격하였고 그분을 바로 앞에서 대면하였음에도 주님을 믿지 못했다. 특히 6장 앞부분을 보면 주님은 사람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셨다. 그것을 통해 사람들은 그분이 오기로 약속한 메시야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음에도 그들은 그분을 메시야로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육체로 오셔서 여러 가지 기적들을 통해 자신이 메시야로 온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음에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어떤 표적을 보여준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것을 통해 주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아니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주님의 사역은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이 일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르는 데서 돌이켜 집으로 갔다.
요 6:66 그때부터 그분의 제자들 중의 많은 사람이 돌아가고 다시는 그분과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사역이 실패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분명한 것이 드러났다. 그 점을 주님은 37절부터 설명한다.
요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분명히 그대로 성취될 것을 아셨다. 분명 그분의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많은 수가 다 떠나가 버렸지만 주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분명 그분께로 올 것임을 아셨다. 이 구절은 우리의 구원에 대해 중요한 두 가지를 가르친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선택하심이고 두 번째는 인간의 책임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만일 누군가가 구원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의 의지를 사용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여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먼저 주 예수님께 가기 전에 이미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자”라는 점이다. 그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에 나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라는 것을 말한다. 데살로니가전서 1:4은 그 점을 명확히 말한다.
살전 1:4 사랑하는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너희를 선택하셨음을 아노라. (Knowing, brethren beloved, your election of God.)
여기서 “하나님께서 너희를 선택하셨음”이란 부분을 영어로 보면 “your election of God”이렇게 되어 있다. 오늘날 방식으로 문법적인 해석을 하면 이것은 “너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이것은 영어 흠정역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의 문법적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어 흠정역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 수동태의 주어를 표기할 때 “of”를 써서 나타냈다. 오늘날은 “by”를 사용한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수동형 문장이 명사형태로 기록된 표현이다. 즉 “ye are elected of God”을 명사형태로 기록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그리스어 성경의 해석과 잘 일치한다.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벧전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에 따라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을 통해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에 이르도록 선택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을지어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에는 그분의 “미리 아심”에 따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누군가를 택하시어 그로 하여금 성령님의 거룩히 구별하심을 통해 믿음으로 순종함에 이르도록 부르셨다.
살후 2:13 그러나 주께 사랑받는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로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하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과 진리를 믿는 것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셨기 때문이라.
우리가 진리를 택하여 믿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처음부터” 택함으로써 우리 안에서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주님을 믿도록 하셨다.
골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요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로서 긍휼히 여기는 심정과 친절과 겸손한 마음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으로 옷 입고
벧후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열심을 내어 너희를 부르신 것과 선택하신 것을 확고히 하라. 너희가 이것들을 행하면 결코 넘어지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의 선택하심은 그분이 우리를 “예정”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롬 8:28-33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 그런즉 이 일들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그분을 내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또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33 누가 무슨 일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고소하리요?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선택하여 그들을 예정하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다. 그렇다면 그분의 선택은 언제 시작이 된 것인가?
엡 1:4 곧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에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세 이전”에 우리를 택하셨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였으며 아직 우리의 모습이 형성되지 아니한 때이다. 심지어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아직 창조되지 아니한 때였다. 그러나 주님은 그분의 미리 아심을 통해 우리를 아셨으며 우리를 택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그분의 자녀가 되도록 예정(미리 정하심)하셨다. 즉, 우리는 창세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택하신 자들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께 주어진 자들이 되었다.
이것을 두고 “칼빈의 예정론”으로 이해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성경의 교리는 칼빈의 예정론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것은 이 구절의 뒷부분에서 드러난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죄인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 예수 그리스도께 와야 한다. 그것은 35절을 통해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즉, 죄인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이용하여 그분을 자신의 구원자로 믿는 일이 요구된다. 이것은 구원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말한다. 만일 누군가가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을 가게 된다면 그것은 그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책임이며 하나님께 있지 않다.
어떤 이들은 누군가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구원받지 아니한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아니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누군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이유는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이전에 선택하신 것은 그분의 “미리 아심”에 따른 것이다.
칼빈은 “저항할 수 없는 은혜”에 대해 가르친다. 누군가가 구원받기로 예정이 된 선택받은 사람이라면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항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항할 수 없는 은혜”란, 인간은 죄와 허물로 죽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로는 복음의 말씀에 반응할 수 없다는 것으로,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먼저 거듭나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의지로 저항될 수 있음을 말한다.
마 23:37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대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보낸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자기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함께 모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그들을 믿음으로 회복케 하시려고 여러 차례 자신의 대언자를 보내시기도 하셨으며 이제 직접 오셔서 그들을 부르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원치 아니하였다. 이 일은 사도 바울이 비시디아의 안디옥에 들어가서도 동일하였다. 바울은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행 13:43-48 이제 회중이 흩어진 뒤에 유대인과 신앙심 있는 유대교 개종자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람이 그들에게 말하며 그들을 설득하여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게 하니라. 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거의 온 도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함께 나아왔으나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들을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그것들을 대적하여 말하고 반박하며 신성모독하거늘 46 이에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하게 되어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너희에게 먼저 말할 필요가 있었으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너희 자신을 영존하는 생명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판단하므로, 보라, 우리가 이방인들에게로 향하노라.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이방인들의 빛으로 세웠나니 이것은 네가 땅 끝까지 이르러 구원을 위한 일꾼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느니라, 하매 48 이방인들이 이 말을 듣고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에 영광을 돌리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정해진 자들은 다 믿더라.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도 동일한 것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해 왔다.
행 7:51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 받지 않은 자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님을 거역하되 너희 조상들이 행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행하는도다.
그렇다면 인간이 구원받은 것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스스로 하나님을 믿은 것인가? 단순히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심을 통해서만 인간을 선택하신 것인가? 그 답은 “아니오”이다. 인간은 범죄함으로 그의 영은 죽은 자가 되었다. 이것은 그의 영이 없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의 기능이 축소되었음을 말한다.
엡 4:17-18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다른 이방인들이 헛된 생각 속에서 걷는 것 같이 걷지 말라. 18 그들은 지각이 어두워졌으며 자기들 속에 있는 무지함과 자기들 마음의 눈먼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떨어져 있도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그의 영적인 눈이 멀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것들을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그의 영적인 지각은 어두워졌으며 그는 영적인 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였다.
고전 2:14 그러나 본성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니라. 또 그가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것들은 영적으로 분별되느니라.
그러므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롬 3:10-11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성령님의 역사 없이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령님께서 그 사람 안에서 역사하여 하나님에 대한 계시를 깨닫도록 해주시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없다.
갈 1:16 자신의 아들을 내 안에 계시하사 내가 그분을 이교도들 가운데 선포하는 것을 기뻐하실 때에 내가 즉시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였고
엡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그분을 알게 하시고
즉, 인간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구원받지 아니한 것은 그에게 알려진 하나님의 계시를 스스로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거부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에 대해 자연을 통해 그리고 복음 전파자의 입을 통해 증거되는 말씀을 통해 계시하신다. 그러나 구원받을 사람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이 있다. 이것이 롬 8장 30절에서 말씀하시는 바이다.
요 6:38 나는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로부터 내려오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내려왔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시기 위해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분”이시다. 이것은 그분의 탄생에 대한 중요한 점을 언급하셨다. 그분의 삶은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분은 그 이전부터 영원 전부터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시며, 이제 우리의 구원을 위해 갈보리로 가시려고 이 땅으로 내려오신 것이다. 41절과 42절을 보면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은 그분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 6:41 그분께서, 내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빵이라, 하셨으므로 그때에 유대인들이 그분에 대해 수군거리며
요 6:42 이르되,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우리가 아는데 어찌 그가 말하기를, 내가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하느냐? 하니
그들은 예수님이 요셉의 아들이라 생각하였다. 만일 예수님이 요셉의 아들이라면 그분은 절대 하늘에서 내려올 수도 없으며 또한 우리의 구원자가 되지 못하셨을 것이다. 만일 예수님께서 요셉의 아들이었다면 그분은 한 죄인에 불과한 셈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탄생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여 태어나신 분이셨다. 성경은 분명히 그분의 아버지가 누군인지 말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셨을 때 하나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셨다. 성경은 요셉을 두고 예수님의 아버지로 일컬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눅 2:33 요셉과 아이의 어머니는 그가 아이에 관하여 말한 그것들로 인해 놀라워하더라.
개역성경을 보면 요셉과 아이의 어머니로 되어 있지 않고 “부모”로 되어 있다. 이것은 잘못된 번역이다.
눅 2:48을 보면 유일하게 요셉을 두고 “네 아버지”라 말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도 주님은 그들에게 “내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힌다.
눅 2:48-49 그들이 그분을 보고 심히 놀라며 그분의 어머니는 그분께 이르되, 아들아,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며 너를 찾았노라, 하매 49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반드시 내 아버지 일을 해야 함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라.
요 6:39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은 이것이니 곧 그분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 중에서 내가 하나도 잃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그것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주신 모든 자들 중 “하나도 잃지 아니하”고 모두 구원을 받으며 또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하늘로 데리고 가시기 전까지 즉, 부활 때까지 보존되는 것이다. 여기서 “뜻”으로 번역된 단어는 영어 단어로는 will이다. 어떤 이들은 이 단어를 두고 성도의 구원의 영원한 안전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왜냐면 will은 “소망, 바램”의 의미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석된 부분이 성경에 존재한다.
딤전 2:4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Who will have all men to be saved and to come unto the knowledge of the truth.)
이런 주장은 단순히 그리스어를 살펴봄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요한복음 6:39에 나오는 will은 “뗄레마”로 “목적과 선택에 따른 결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화자의 강한 의지를 말한다. 반면 디모데전서 2:4의 그리스어는 “뗄로”로 “원함”의 의미를 갖는다. 즉, 원어 상에서부터 다른 단어가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한글 흠정역 성경도 이에 맞추어 번역하였다.
“마지막 날”이란 예수님께서 휴거 및 재림이 포함된 “주의 날”에 대한 일반적 표현이다. 그날에 주님께서 공중에 오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 살아있는 성도들이 변화되어 끌려 올라가 주님과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성경은 “그것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라 표현했다. 앞서 “내게 주신 모든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그것”이라고 단수(it)로 표현한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집합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하는 “그것”으로 말하고 계신다.
엡 1:23 교회는 그분의 몸이니 곧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이니라.
만일 여러분이 구원받은 성도라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가 된 것이다.
고전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나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으며 모두가 마시게 되어 한 성령 안으로 들어왔느니라.
그렇다면 주님께서 자신의 몸의 일부가 된 성도의 구원을 부정하겠는가? 아니다. 오히려 마지막 날에까지 보존하실 것이다.
엡 1:14 이 영께서는 값 주고 사신 그 소유물이 구속을 받기까지 우리의 상속 유업의 보증이 되사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시느니라.
요 6:40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이것이니 곧 아들을 보고 그를 믿는 모든 자가 영존하는 생명을 얻는 것이니라.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대해 더욱 명확하게 언급한다. “곧 아들을 보고 그를 믿는 모든 자가 영존하는 생명을 얻는 것”이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당시는 문자 그대로 예수님을 보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런데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들은 눈멀어 주님을 볼 수 없다.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떨어져 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서 역사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깨닫도록 역사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믿도록 역사하신다. 지금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 속에는 복음의 빛이 가리워져 보지 못한다.
고후 4:3-6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려졌다면 그것은 잃어버린 자들에게 가려졌느니라. 4 그들 속에서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가려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5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선포하지 아니하며 오직 주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또 예수님으로 인하여 너희의 종 된 우리 자신을 선포하노니 6 빛에게 명령하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느니라.
요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며 내게 오는 그를 마지막 날에 내가 일으키리라.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에서 더 나아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이라 말하고 있다. 아무도 스스로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그 사람 안에서 주 예수님에 대해 계시하며 또한 그를 이끌어야 한다. 인간은 그 자체로 완전히 소망도 없고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도 없는 자이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우리의 마음 안에서 우리의 죄성에 대해 보여주시며 구원자에 대한 필요와 주 예수님의 사역과 그분에 대해 계시하심이 없이는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요한복음 12:32에서 주님은 십자가 이후,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로 이끌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요 12:32 나 곧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리라, 하시니라.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은 자기 때에 복음을 다 듣게 된다. 그분은 정하신 때에 증언을 받으실 것이다.
분명 우리가 주 예수님에 대한 계시를 얻은 후에 그분을 영접할지 거부할지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먼저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그분을 알지도 못한다. 그런 점에서 믿음은 동전의 양면의 속성을 지녔다. 믿음은 우리의 의지를 사용하여 그분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믿음의 시작은 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다. 그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주님께서 보여주신 것에 순종함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 차례 믿음으로 순종함이라 표현한다.
행 6:7 하나님의 말씀이 자라나서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제사장들의 큰 무리도 믿음에 순종하니라.
롬 1:5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믿음에 순종하게 하려고 우리가 은혜와 사도직을 받았나니
롬 16:26 이제는 밝히 드러났으며 영존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대언자들의 성경 기록들을 통해 믿음에 순종하게 하려고 모든 민족들에게 알려지게 된 신비의 계시에 따라 너희를 굳게 세우실 분
또한 믿음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자라난다.
요 6:45 대언자들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으리라, 하고 기록되었으니 그러므로 아버지께 듣고 배운 자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위에서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이끌지아니하면 자신에게로 오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이사야 54:13을 인용하여 말씀하신다.
사 54:13 또 네 자녀들이 다 주에게 가르침을 받으리니 네 자녀들에게 큰 평강이 있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구원받을 사람들을 선택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자신의 소중한 말씀을 가르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깨닫도록 도우신다. 여기에 또한 인간의 의지가 관여한다. 마음속에서 아버지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반응하여 그리스도께 오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권적인 선택과 함께 인간의 자유의지가 함께 역사하는 것을 본다. 이 두 가지는 서로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공존하는 것이다. 마치 기차선로의 두 레일이 평행선을 이루어 쭉 뻗어 있는 것처럼 그러하다.
요 6:46 이 말은 어떤 사람이 아버지를 보았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는 것으로 이해할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거나 혹은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하면서 그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주님은 그 의미가 아님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어떤 사람이 아버지를 보았다는 것이 아니니라.” 그렇다면 아버지를 본 자는 누구인가?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자들은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다. 주님은 그들이 아버지를 본 자들이라 말한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이라면 여러분은 아버지를 본 사람들이이다. 물론 여러분은 눈으로 그분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여러분의 영적인 눈은 열렸으며 영적으로 그분을 뵌 것이다.
요 6:47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
47절에서 주님은 분명하고 간단하게 말씀하신다. “나를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 만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면 여러분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가? 영존하는 생명이다. 여러분은 절대 예수님께서 잃어버리는 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결론
마치 기차선로의 두 레일이 평행선을 이루어 쭉 뻗어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서로 하나가 될 수 없는 교리이다. 그러나 마치 먼 거리에서 보게 되면 두 레일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처럼 보이듯이 이 두 가지는 인간의 구원의 영원한 영역에서 보면 하나로 융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교리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만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면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선택으로 그분을 믿은 것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바로 하나님의 선택을 통해 여러분이 그분의 은혜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또한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다. 그것은 절대 잃어버릴 수 없으며 주께서 여러분을 다시 일으키심으로써 그것을 확증할 것이다. 주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제시하신 것을 기억해보라. 주님은 “나는 산 자의 하나님이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는 아브라함도 살아있는 자이며, 이삭도 살아있으며, 야곱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이 죽는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께는 살아있는 자가 될 것이다.
요일 5:11-13 또 그 증거는 이것이니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분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하고 또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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