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Caesar(인명)
Caesar Augustus
`율리오 케사르'(Julius Caesar)의 속명이었는데,
그의조카 아우구스투스가 제국(帝國)을 조직한 후부터 황제의 칭호로 되어, 실제로는 `황제'의 동의어로 쓰였다. 통치권을 손에 넣고, 그는 겸손을 가장하여 황제의 위를 사양했다. 그러나 대장군, 즉 군 통수자의 지위를 누렸다. 그의 이름 `케사르'는 그의 상속자들이 준 것인데, 점차 왕위보다 더 큰 의의를 가진 제위로 되었다.
라틴어에서 `임페레이터'라는 칭호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그는 황제와 꼭같은 권세를 얻었다.
신약 시대의 팔레스틴과 유대인들은 로마 가이사의 권세 하에 있었다.
신약의 역사는
아구스도(재위 BC 31- AD 14, 눅 2:1),
디베료(재위 AD 14-37, 눅 3:1,20:22-25),
칼리쿨라(재위 AD 37 –41),
글라우디오(재위 AD 41- 54, 행 11:28,17:7) 및
네로(재위 AD 54- 68, 행 25:-28:; 빌 4:22)의 처음 다섯 가이사의 재위 기간과 일치한다.
각 시대의 사건들:
아구스도는 예수 탄생할 때 호적을 하라는 명령을 내렸고(눅 2장),
디베료때에 세례요한은 전도하며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었고(눅 3장),
글라우디오 때에 아가보 선지자는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와서, 성령의 지시로 흉년이 들 것을예언했다(행 11:28).
네로 때에는 바울이 로마의 옥에 갇히게 되었다(행 25:11). 그는천하의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통치의 초기에는 재능있게 정치를 했으나, 59년 어머니를 살해하고, 또 정부 사비나를 취하기 위해(62) 황후 옥타비아를 살해하는 등 폭정은점점 극에 달했다. 특히 자기의 궁궐을 개축할 계획을 세우고 민심을 얻기 위해 67년7월 방화했다. 그 대화(大火)의 책임을 기독교도에게 전가시키려고 전대미문의 대학살을 함으로써, 최초의 기독교 박해가 시작되었다. 베드로와 바울도 그의 손에 희생되었다. 당시 유대인으로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자는 가이사에게 상고할 권리가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의 무죄함을 가이사에게 호소한 적도 있었으나, 뜻대로되지 않았다(행 25: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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