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회 이후로 좁은 길을 걸은 믿음의 성도들은 성경의 분리 모델에 따라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추구하며 살았고 그 결과 국가 교회로부터 많은 탄압을 받았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 교회는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로 퍼져 나가 1세기 후반에는 그 당시의 온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또 국가 교회의 모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짊어지고 도시를 떠나 산지에서 계곡에서 유랑하며 꾸준히 순례의 행보를 이어갔다.
주후 2세기에는 처음으로 소아시아에서 몬타니스트들(Montanists)이 사도 교회의 순수성을 외치면서 믿는 성도만이 교회의 회원이 됨을 주장했으며 스스로 믿음을 고백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에게 베푸는 유아 세례는 전적으로 비성경적임을 선언하고 재침례(Ana-baptism)를 행했다.
주후 3세기에는 로마 제국 전역에서 노바티안들(Novatians)이 일어났다. 이들 역시 유아 세례의 죄악을 폭로하며 교회의 순수성을 외쳤다. 이들은 그 순수성으로 인해 후에 ‘순수한 자들’이라는 뜻을 지닌 카타리들(Cathari)이 되었다.
그 뒤 4세기 초에는 아프리카에서 도나티스트들(Donatists)이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외치며 일어났다.
또한 7세기경에는 타우루스 산지에서 폴리시안들(Paulicians)이 초대 자유 교회의 맥을 이으며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선교하기 시작했는데 이들 역시 구원받은 성도들만의 침례와 그런 성도들만의 교회 회원권을 주장했다.
그 뒤 그리스도의 자유 교회는 12세기경의 왈덴시스들(Waldensians)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들은 알프스 계곡에서 바른 성경을 붙들고 오직 성경만이 최종 권위임을 외치면서 천주교회와 분리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불가리아와 보스니아에서는 보고밀 (Bogomil)이라는 이름의 자유 교회가 천주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받으면서 급속히 퍼지기 시작했다.
한편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는 폴리시안의 뒤를 이은 알비겐시스 (Albigenses)가 신약 성경의 가르침을 들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성도들이 세상과 분리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였다.
출처: 칼빈주의 비평(킵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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