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1885년 4월 5일 부활절,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장로교)와 아펜젤러 부부(감리교)가 인천 제물포항을 통해 입국)
- 일시 및 장소: 1816년 9월 5일,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마량진 (갈곶)
- 주요 사건: 영국의 알세스트호(Alcest)와 리라호(Lyra)가 서해안 탐사 중 마량진에 도착, 함장 맥스웰(Maxwell)이 마량진 첨사 조대복에게 성경(1611년 초판 킹제임스 성경)을 전함
- 역사적 의미: 선교사보다 성경이 먼저 들어온 사건으로,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짐
- 기념 시설: 현장에는 한국최초성경전래지기념관이 건립되어 당시의 성경과 역사를 전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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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www.seomyeon.net/pop-bib.html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고을--한국최초성경전래지
한국최초성경전래지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마량리(마량진) 마량리(옛지명 마량진)는 1816년 9월 5일 영국의 맥스웰과 바실 홀 해군 대령이 알케스트호와 리라호로부터 첨사 조대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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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마량리(마량진)
마량리(옛지명 마량진)는 1816년 9월 5일 영국의 맥스웰과 바실 홀 해군 대령이 알케스트호와 리라호로부터 첨사 조대복에게 성경을 전달한 한국 최초 성경 전래지라는 사실이 이미 고증되었다. 더구나 마량진은 아펜젤러 선교사의 죽음의 장소로 고증된 어청도(오세이도)에서 제일 가까운 육지이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한국 감리교회 최초의 선교사로 복음 증거를 위한 노력뿐 아니라, 한국 근대사와 교육사, 독립운동사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성경 번역 차 1902년 6월 11일 인천에서 목포행 기선 구마가와마루를 타고 가던 중 오세이도(어청도의 일본이름) 부근에서 같은 회사 소속 기소가와마루와 충돌사고가 있었다. 이때 아펜젤러 선교사는 구조될 수 있었지만 함께 성경 번역을 위해 동행하던 조한규와 정신여학교 교장 도티로부터 부탁받아 동행케 된 목포가 집인 여학생을 구출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순직하신 분이시다. 이에 감리교회에서는 어청도에서 제일 가까운 육지인 마량진에, 더구나 마량진 한국 최초 성경 전래지 성역화 사업지 내에 아펜젤러 선교사 순직 기념관을 건축하기로 2005년 7월 22일 총회 실행부 회의에서 결의 되었다. 춘장대 해수욕장과 관광지 동백정이 있는 마량진에 기념관이 세워진다는 것은 한국 기독교 역사만 아니라 한국 근대화의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고 많은 분들이 찾는 자랑스런 성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곳 마량진이 한국에 성경이 전래되면서 서구 사회에 소개가 되었고, 선교사들이 찾아와 근대사를 이끌었던 것을 전하면서, 오늘의 성도들에게 자긍심과 함께 이 땅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짐하며 세계선교를 향한 도전을 받고 결단하는 장소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최초의 성경책은 1816년 마량진에서 영국인으로부터 조선인 조대복 마량진 첨사에게 전해진 성경책이다.
순조실록(純祖實錄) 권 19(조선왕조실록 제 48권)에 순조 16(丙子年, 1816)년 7월 19일(음) 병인조의 충청수사 이재홍(李載弘)의 장계에 ‘其左右上下層閤問無數書冊中 渠又 拈出二卷 一卷給縣監 一卷級僉使’란 글이 있다. 이 내용은 ‘마량진(馬梁津) 갈곳 밑에 이양선 두 척이 표류해 있었는데 마량진 첨사(수군첨절제사 ; 水軍僉節制使) 조대복과 지방관 비인 현감 이승렬(李升烈)이 그 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각각 책 한권씩을 선물 받았다’는 뜻이다. 이 장계에서 이재홍은 이양선 두 척이 마량진에 임의대로 두류(逗留)하고 환거(還去)했음에도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한 죄상을 상신한 것으로 이후 조대복과 이승렬은 파직되었다.
영국 정부로부터 조선의 서해안 일대 해도를 작성하라는 명령을 받은 영국 군함 리라(Lyra)호의 함장 바실 홀(Basil Hall)과 머리 맥스웰(Murry Maxwell) 대령이 이끄는 알세스트(Alceste)호가 조선 순조 16년인 1816년 8월29일 산동반도를 출발하여 9월 4일 비인만 마량진 갈곶에 정박하여 마량진 첨사 조대복의 문정을 받았다(후에 문정의 내용이 영국인들의 기록으로 남겨짐) 그리고 다음날 9월5일 현감 이승렬이 영국 군의관으로부터 서양식 진찰을 받았다(눈 혀 검사, 손목 진맥, 청진기로 가슴진찰, 진찰대 위에 눕혀 배 등 서양의사의 면밀한 진찰) 또한 리라호를 실측, 승무원의 총수 조사, 함포사격 시범관람, 식사초대 등을 받았다. 그러나 영국인들의 상륙에 대해서는 조대복이 목을 베는 시늉을 하며 반대를 하여 성사되지 않았다. 바실 홀의 기록에 의하면 ‘조대복은 영국인들의 친절에 안도하면서 배에 있는 서적들을 구경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주는 선물을 모두 거절했으나 배가 출발하기 직전에 맥스웰 함장이 건네 준 대형 성경책은 거절하지 못하고 받았다.’는 것이다. 이 기록은 알세스트호에 승선했던 군의관 맥레오드(John Mcleod)의 항해기와 1818년 영국 런던에서 출판된 류큐항해기에도 실려 있다. 영국인들의 기록에서 첨사의 높은 문화적 소양에 대해 “그렇게도 색다른 인종의 습관을 잘 소화해 나가는 그 우아하고 자연스러운 태도는 정말 놀랄 만했다. 더구나 그가 지금까지 우리들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으리라 생각할 때에 그의 그 훌륭한 태도는 그 사회에 있어서의 그의 지위를 짐작케 할 뿐 아니라, 우리와 전혀 다른 환경에 놓여 있는 그 사회의 문화 정도가 무시하지 못하리만큼 높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는 연구심이 매우 왕성하여 사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애써서 실험해 보고 성공하게 되면 아주 통쾌하게 웃어댔다. 그는 결코 터무니없이 놀라거나 과도한 찬사를 하는 일이 없고 세계 어느 곳에 갖다 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한 훌륭한 교양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찬사를 하였다.
1816년 9월 5일(순조16년)에 영국의 바실 홀과 맥스웰 해군 대령이 리라호와 알케스트호를 타고 중국을 거처 서해안을 탐사하던 도중 서천 마량진 갈곳에 정박, 조사 나온 첨사 조대복에게 한국 최초의 성경이 전달되었다. 이는 그 동안 알려진 독일인 선교사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utzlaff)가 1832년 충남 보령시 고대도에 상륙하여 성경을 전해주고 주기도문을 번역한 것보다 16년이나 빠른 시기이다. 또한 이들의 항해일지에서 한국(당시 조선)을 서양에 소개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선교의 계기가 되었고, 선교사들의 방문으로 한국 근대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또한 문화사적으로도 성경의 전래로 서양문화와 접촉의 함축성을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국제교류관계에서도 비록, 영국정부의 공식적인 허락으로 한국을 찾아와 바로 국제관계가 형성되지는 않았지만 한영간 민간교류 측면에서 한영국제관계의 역사적인 의미가 깊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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