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선택론이 옳다면,
바울은 신실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안심을 권하였을 것이다.
고난의 인내보다는 찬송의 즐거움을 권했을 것이다.
복음의 전도보다는 회당에서 기다렸을 것이다.
그의 전생애를 고난에 내몰기 보다는 유람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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