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사건이후 제자들이나 예수님을 따랐던 무리들은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과 가까웠던 사람들조차 무엇이 어찌될지 두려움에 있었다. 유대인 지도자들의 서슬 퍼런 칼날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제자들 조차도 숨을 죽이며 흩어지고 몰래 모였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예수님이 병을 고쳐 주었던 사람들은 어찌 생각해야할 지 모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다는 말씀을 마음에 두고 있는 이들은 유대인 지도자들 뿐이었다. 그런 일이 생기지 못하도록 주의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이름이 다시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하기위해서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부활하신 거다.
그것을 제자들이 확인했다.
몇 번에 걸쳐서 분명히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들은 기쁨에 넘쳤고 그 뒤로 성령이 임하신 후에 땅끝까지 예수님의 증인들이 되었다.
그 뒤로는 그들의 목숨은 중요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계시는 아버지 집으로 가게 되는 소망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런 소망을 가지는가?
바울도 그것의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을 잠재우지 않으면 유대교가 이 이단에 의하여 위험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더욱 힘을 다해서 이것을 잠재우려 했다.
바울은 예수님을 직접 만난 후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구약 모두가 예수님을 증언하고, 증언한바가 이루어졌다는 결론에 이르고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 스데반의 설교도 떠올랐을 것이다.
예수님을 직접 만난 것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 말고도 또 있었을 것이다. 세번째 하늘로 올라간 사건에서 예수님을 직접 뵈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상에서 그동안의 예수님을 핍박했던 빚을 갚아야 하겠지만, 그는 달려갈 길을 다 갔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하늘에서 상급을 기다린다고 했다. 장막을 빨리 벗는 것이 본인에게 좋다고 했다.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하늘에 두고있는가?
인생이 고달파 하늘에 두는가? 만일 인생이 잘 풀려도 그럴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있는 일을 본질적으로 즐거워하는 것인가를 잘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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