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토라, 미쉬나, 탈무드

별을 보며 2024. 2. 2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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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 미쉬나, 탈무드

토라 1. 토라의 어원적 의미 유대인의 삶과 신앙의 중심은 일반적으로 율법이라 번역되는 ‘토라’(Torah)이다. 역사적으로 토라만큼 오해를 받은 개념도 없다. 토라에 대한 오해는 구약성서의 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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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부인하며
환란의 시기까지는 결코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 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 중에는 독사의 자식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저주하며 모독하는 내용이 탈무드에 있습니다. 

 

이들은 기독교인의 성경적인 사고와 다릅니다.

 

막7:13 너희의 전통 곧 너희가 전해 준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가 되게 하며 또 그 같은 일들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니라.

 

다음은 일반적(신학교에서 기르쳐지는)인 내용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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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 미쉬나, 탈무드

 

토라

 

1. 토라의 어원적 의미

 

유대인의 삶과 신앙의 중심은 일반적으로 율법이라 번역되는 토라’(Torah)이다. 역사적으로 토라만큼 오해를 받은 개념도 없다. 토라에 대한 오해는 구약성서의 헬라어 번역인 칠십인역이 토라를 노모스로 번역하는 것에서 기인되었다. 이것에 근거하여 영어성경은 토라를 ‘Law’라고 번역하였다. 구약에서 때로 토라는 규례나 계명들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중요한 하나님의 법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 (26:5; 16:28; 26:46; 105:45) 이런 경우 토라는 헬라어 노모스로 번역할 수가 있다. 그러나 히브리어 토라는 단순한 율법의 조항이 아닌 하나님의 전체적인 가르침을 의미한다. 토라의 어원적 의미는 던지다로서 길을 가리키다혹은 하나님의 뜻을 정하기 위하여 제비를 던지다등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어원에 근거하여 토라는 가르침’ ‘교훈’ ‘결정등을 의미한다. 즉 토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 계시를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개념이다

 

2. 토라의 구분

 

토라는 히브리 성경의 첫 번째 부분인 모세 오경’(Pentateuch)을 의미한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토라는 히브리 성경 전체를 포함하여 유대교의 종교적-윤리적 문헌 모두를 의미한다. 토라를 율법으로 잘못 이해한 것은 오랫동안 유대인 아닌 사람들이 토라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물이 되었다. 사실 토라는 유대인 문화의 모든 면 즉 유대인이 지니고 있는 윤리, 정의, 종교, 교육 등을 다 포함한다. 유대인들은 토라를 반복해서 공부하라, 토라 속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라고 강조하였다.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토라를 공부하면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의미와 접근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유대인을 가리켜 책의 민족이라는 하는 것은, 단지 유대인이 성경 하나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토라를 배우고자 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토라는 두 가지 형태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Written Torah’ 쓰여진 토라’(토라 쉐--크타브; Torah she-bi-khethav)이고 또 하나는 말로 전달된 ‘Oral Torah’ 구전 토라’(토라 쉐---; Torah she-be-al-peh)이다. 쓰여진 토라는 모세 오경 안에 포함되어 있지만, 말로 전달된 구전 토라는 모세 이후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입으로 전달된 토라를 의미한다. 구전 토라는 쓰여진 토라에 대한 전통적 해석과 확대 적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즉 구전 토라는 쓰여진 토라를 실제 생활 속에서 적용해보려는 실천적 노력을 담고 있다.

 

시내산 계시 이래로 쓰여진 토라와 나란히 존재했던 구전 토라는 미쉬나를 통하여 최종적으로 편집된 기원 3세기까지 수세기 동안 문자화되지 않은 채 구전으로 전해지며 전승의 전달자들에 의하여 계속해서 발전하였다. 이런 점에 볼 때, 요세푸스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특별히 중요하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전해준 전통에 근거하여 백성들에게 많은 구전 법령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제정한 법령들은 구전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모세의 율법에 기록되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의 법령을 거절하였다. 사두개인들은 쓰여진 법령들만을 지켜야지 구전 전통에 근거한 내용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Antiquities, ⅩⅢ, 10:6)>

 

3. 토라 연구의 중요성

 

 

유대인들은 토라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토라 연구를 가장 우선해야 할 일로 여겼다. 그래서 아무리 가난한 자라도 토라를 연구할 의무는 주어졌다고 가르쳤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신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하대로 다 지켜 행하라”(1:8)는 명령에 근거하여 모든 유대인은 가난하건 부하건, 건강하건 약하건, 젊건 늙었던 간에 토라를 연구해야만 한다. 심지어 집집마다 구걸하는 거지라도 토라를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탈무드에 기록된 랍비 아키바와 관련된 내용은 토라 연구의 중요성이 얼마나 컸는가를 보여준다. 그 내용에 의하면, 로마시대 로마가 법으로 유대종교 연구를 불법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랍비 아키바는 유대인 공동체 안에서 토라를 계속해서 널리 가르쳤다. 어느 날 파푸스(Pappus)라는 사람이 아키바에게 질문을 하였다. “아키바, 당신은 두렵지 않습니까? 로마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죽게 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까?” 그때에 랍비 아키바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죠. 물가를 따라 여우 한 마리가 걸어가고 있었다. 여우는 맑은 시냇물에 고기가 앞뒤로 뛰노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여우가 물고기에게 말했다. ‘너는 왜 그렇게 돌아다니느냐?’ 고기들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어부들이 쳐놓은 그물이 무서워 이렇게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거야.’ 여우가 말했다. ‘여기 뭍으로 올라와라. 전에 나의 조상들이 너의 조상들과 사이 좋게 지냈던 것처럼 여기서 나와 안전하게 살자.’. 그러나 고기들이 말했다. ‘물은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자연의 집이다. 만약 여기가 안전하지 않다면 어떻게 우리는 반드시 죽을 육지가 더 안전하겠는가?’” “유대인들도 이와 같습니다.” 랍비 아키바가 계속해서 말했다. “토라는 우리의 생명이며 우리가 살아갈 날들입니다. 우리가 토라를 연구하다가 큰 위험을 맞는다 할지라도, 우리가 토라 연구를 포기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죽고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할 것입니다

 

 

 

미쉬나

 

1.미쉬나의 의미

 

미쉬나는 반복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히브리어 동사 샤나에서 파생되었다. 유대인들의 교육방법은 구전된 율법 내용을 반복하여 학습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복이라는 의미를 지닌 미쉬나는 동시에 가르침을 의미하기도 한다. 도한 그 가르침은 유대교의 전통적 규범에 관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전통적 율법을 의미한다. 마가복음 7:3-15에 나오는 '장로들의 유전'은 곧 미쉬나를 가리킨다.

 

유대교는 토라(율법)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유대교의 이해는 정확한 토라 이해를 전제하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토라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모세 오경에 기록된 쓰여진 토라이고, 다른 하나는 쓰여진 토라에 대한 실천적 적용을 다루고 있는 구전적(口傳的) 토라이다. 미쉬나는 랍비 유다 한나시(Rabbi Judah Hannasi; AD 135-219)가 그의 동료들과 함께 3세기 초 티베리아에서 수집하여 편찬한 것이다. 미쉬나는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었던 유대인들이 4세기 동안 구전 형태로 전승된 종교적 혹은 문화적 활동의 유산이다. 유대인의 법과 윤리가 무엇인지를 집합적으로 보여주는 미쉬나는 히브리 성서 다음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미쉬나의 본문에 대한 논쟁이 곧 탈무드의 자료가 되었다는 점에서 미쉬나는 탈무드 형성의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탈무드 논쟁의 중심이 되고 있는 미쉬나 본문을 탈무드에서는 게마라라고 부른다.

 

2.미쉬나의 구성

 

미쉬나는 모두 6개의 항목(Six Orders: Shishah Sedarim)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6개의 항목들은 다시 63개의 소단위 항목(63 Tractates; Massekhtot)으로 나뉘어진다. 각 소단위 항목은 524개의 장(chapter)으로 구성되고, 각 장은 단락(paragaph)으로 이루어된다. 63개의 소단위 항목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피르케이 아보트”(Chapters of the Fathers; Pirkei Avot)인데, 일반적으로 “Ethics of the Fathers”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소단위 항목인 피르케이 아보트는 미쉬나의 네 번째 항목인 네지킨’(Nezikin)에 속한 것으로서, 그 내용은 조상들(아보트)의 이름으로 언급된 62명의 현자들이 남긴 다양한 형태의 지혜와 도적적 교훈 들이다. 미쉬나가 편찬되기까지 유대인 사회에서는 서기관으로 알려진 소페림’(Soferim)타나임’(Tannaim)이라 불리는 유대교의 전문직 선생들이 기원 2세기말까지 5세기 가까운 기간동안 활약하였다.

 

미쉬나를 구성하고 있는 6개 큰 단위 항목은 다음과 같다.

 

1) Zeraim(): 농업을 다루는 규정들로서 모두 11개의 소단위 항목으로 되어 있다.

2) Moed(축제): 이스라엘의 축제와 명절에 관한 내용으로서 모두 12개의 소단위 항목으로 구성

되어 있다.

3) Nashim(여성들): 주로 결혼과 이혼과 맹세와 관련된 7개의 소단위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4) Nezikin(손해): 민법과 형법을 다루는 10개의 소단위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5) Kodashim(성물들): 주로 성전 예배에 관한 내용으로서 모두 11개의 소단위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6) Tohorah(정결함): 의식적 정결과 부정함에 관한 내용으로서 모두 12개의 소단위 항목으로 구성 되어 있다.

 

3. 미쉬나의 주석

 

주석미쉬나에 관한 가장 최고의 주석은 랍비 오바댜 베르티노로 (Rabbi Obadiah Bertinoro; 1450-1510)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1485년 이스라엘로 이민을 가기 전까지 그는 이탈리아 베르티노로에서 랍비로 일했으며, PalermoCastello에서도 랍비직을 맡았었다. 그는 2년 반이나 걸리는 긴 여행 끝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는데, 그가 자기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서 그의 긴 여행과 그가 목격한 이스라엘의 상태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편지는 당시 이스라엘의 문화와 역사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가 쓴 미쉬나 주석은 일반적으로 그의 이름을 줄여서 ‘Bertinoro’라고도 부른다. 그의 미쉬나 주석은 알기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히브리어 문체로 표현되었으며, RashiMaimonides의 주석에서도 등장하고 있는 최고의 해석들을 담고 있다.

 

4. 미쉬나와 토세프타

 

부록혹은 추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토세프타’(Tosephta)는 내용과 구성 면에서 미쉬나와 유사하다. 그러나 포세프타에는 미쉬나에 나오지 않는 내용들을 추가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토세프타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관련 주제를 다룰 때 토세프타는 미쉬나보다 더 구체적이라는 점도 토세프타의 특징이다. 또한 토세프타는 할라카’(halakhah; 유대인의 구체적인 실천 규범)에 대한 성서적 증거와 이유를 자주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미쉬나에서 찾아보기 힘든 점이다. 이런 차이점은 미쉬나와 토세프타의 편집 목적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즉 미쉬나는 암기하기 쉽도록 꼭 필요한 내용 이외에는 가능한 한 생략시켜 그 내용을 간결하게 편집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토세프타는 보완적 성격의 문서로서 후대에 필요한 내용을 가능한 한 충분한 포함시켜 자료집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편집하였다는 것이다.

 

토세프타는 여러 종류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토세프타를 처음으로 수집하고 편집한 것은 3세기 초반 랍비 유다 한나시의 제자였던 랍비 히야(Rabbi Hiyya)와 랍비 오샤야(Rabbi Oshaya)에 의한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같은 견해는 Rav Sherira Gaon(906-1006)에 의해 저술된 권위 있는 문서들 속에서 피력되기도 하였다.

 

 

 

 

 

 

탈무드

 

유대인하면 탈무드를 떠올린다. 유대인 정신의 보고라 할 수 있는 탈무드는 유대인 정신의 전부라 할 수 있다. 대형서점에 가보면 '탈무드'라는 이름의 책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무려 이십여 개의 출판사가 앞다투어 내놓은 것을 보면 그래도 꽤 잘 팔리는 책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어느 출판사가 영어나 일어책을 번역한 원조(?)인지 번역한 책을 그대로 또 베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더군다나 '탈무드'는 처세술에 분류되어 진열되어 있으니 이 또한 놀랍다. 과연 탈무드는 처세술의 책인가?

 

오늘날 유대인,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다 탈무드를 배우고 있는가? 그러나 실제로는 소수의 유대인들만이 탈무드를 배우고 있다. 유대인이라고 모두 탈무드를 배우거나 능통한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그들의 역사의 일부로서 성경을 배우기는 하지만 탈무드는 종교인들만이 배운다. 우리들이 탈무드라는 이름으로 시중에 출판된 책을 읽고 탈무드를 안다고 한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유교문화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학교나 가정에서 더 이상 사서삼경을 배우지 않듯이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도 탈무드를 배우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유대인 중 약 6 퍼센트를 차지하는 정통파 종교인들은 자녀들에게 세속교육은 아예 시키지 않고 탈무드 교육만을 시킨다. 종교인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세속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거니와 세속 어린이를 사귈 기회도 없다. 종교인 가정에는 바보상자인 텔레비전도 없으니 도심 속에 살아도 종교인들은 일반 세상과 무관하게 살아간다.

 

또한 세속적인 유대인들은 종교와는 무관하게 살고 있다. 작은 땅덩어리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세속적인 유대인과 종교적인 유대인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그야말로 동상이몽이 오늘의 이스라엘 모습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토라는 좁은 뜻으로는 구약성경의 모세오경만을 가르치지만 넓은 뜻으로는 구약성경 전체와 탈무드까지도 포함된다. 유대교에서는 토라를 성문토라와 구전토라로 나눈다. 유대인들은 구전토라를 구약성경인 성문토라와 똑같은 권위로 인정한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에 미처 기록하지 못한 것들이 구전토라이며 이것은 세대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전수되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자 유대인은 더 이상 제사를 드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대인은 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제사 중심의 삶을 포기하고 토라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토라는 주후 220년 랍비 예후다 하나시가 집대성하였으며 이것을 미쉬나라고 부른다. 미쉬나는 씨앗(농사에 관하여), 절기(명절), 여성(결혼, 이혼 등 가정사에 관하여), 손해(민법, 형법,재판에 관하여), 성물(聖物, 희생제사와 성전 제사에 관하여), 정결(제의적인 정결과 부정에 관하여)의 여섯 개의 큰 주제로 나뉘고 큰 주제는 약 10여개의 소주제별로 또 나뉘어진다. 이 미쉬나는 유대인 삶의 모든 영역을 규범화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대교 현자들은 미쉬나를 해석하고 설명해 나갔다. 이 미쉬나에도 추가적인 설명이 덧붙여졌다. 미쉬나를 본문으로 하고 이를 해석하는 주석 그마라가 덧붙여진 것이 탈무드의 형태이다.

 

주후 5세기에 갈릴리에서 편찬된 탈무드는 후에 편찬된 바벨론 탈무드와 비교하여 팔레스타인 탈무드 또는 예루살렘 탈무드라고 불린다. 그 후 한 세기가 지나서 바벨론의 유대교 현자들은 더 광범위한 바벨론 탈무드를 완성시켰다. 바벨론은 남유다의 백성들이 바벨론에 정착하면서부터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중심지가 되었고 성전이 파괴된 이후 율법연구는 팔레스타인이 아닌 바벨론의 수라(Sura)와 품베디타(Pumbadita)에서 발전을 거듭했다.

 

공자와 맹자의 교훈 되는 말 몇 마디로 유교를 안다고 할 수 없듯이 탈무드의 재미있는 예화 몇 가지만으로 유대교와 탈무드를 다 안다고 할 수가 없다. 유대인 학생들조차도 탈무드는 배우기 어려운 과목으로 여긴다. 이제 더 이상 탈무드를 처세술이나 이솝이야기같이 재미있는 책의 하나로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인용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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