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주의 만찬 the Lord's supper

별을 보며 2023. 4. 8. 17:57

출처: lib.bible.kr/m/28.htm

 

 

주의 만찬

국의 수도에 미국 초대 대통령을 기념하는 워싱턴 기념탑이 하늘 높이 솟아 있습니다.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링컨 기념관이 또 하나의 위대한 대통령에게 영예를 돌리고 있습니다. 거기서 가까운 버지니아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무명 용사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을 기리기 위해 사람들은 돌로 만든 탑을 세우곤 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 결국에는 그런 기념물도 무너지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그를 기억하는 기념물을 남기기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세우신 기념물은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살아있는 기념물입니다.  

주의 만찬의 제정

배신 당하시던 날 밤 예수께서는 오순절 식사를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이 함께 식사할 때 예수께서 유월절 축제 때 먹는 누룩 없는 떡을 들어 감사기도를 하신 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고린도전서 11:24-25) 이렇게 하여 예수의 죽음부터 오늘날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구세주를 기념하는 주의만찬이 제정되었습니다.

주의 만찬에 대한 여러 명칭들

이 기념 식탁을 가리키는 여러 명칭들이 성경에 나옵니다. “주의 만찬”이라는 명칭은 제자들이 예수를 기념하도록 하기 위해 주님께서 제정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습니다. (고린도전서 11:20) 고린도전서 10:16에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친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떡과 잔을 나눔으로써 그 식탁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예수의 친교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42와 20:7에서는 “떡을 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표현은 종종 일반적인 식사를 의미하기도 했지만 이 두 구절에서 언급하는 떡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성스러운 식탁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주의 만찬을 종종 성찬식(Eucharist)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감사의 식탁”이란 뜻입니다. 하지만 이 용어는 영감으로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주님의 만찬을 가리켜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성경적 권위를 갖는 용어가 아닙니다. 때로는 주의 만찬을 성례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외적 표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념도 성경과는 거리가 멉니다. 주의 만찬은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다음과 같은 독특한 목적을 위해 제정된 것입니다. 

주의 만찬의 목적

원래 주의 만찬은 기념하는 식탁입니다.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신 예수의 말씀이 이를 분명하게 밝혀 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떡과 포도나무에서 난 것에 참여할 때 이천 년 전 인류의 죄를 위해 갈보리 십자가에서 달리신 주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떡은 구세주의 고난 받은 몸을 나타내며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우리 각 사람을 위해 온전한 희생으로 흘리신 그의 피의 표상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그리스도와 나누는 이 친교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기념 그 이상입니다. 포도 잔을 가리켜 주님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1:25) 여기서 언약을 계약으로 번역할 수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구절의 의미입니다.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 사이에 맺은 눈에 보이는 계약의 표시 곧 우리가 그에게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 영원한 집을 상급으로 주시겠다는 언약입니다.
주님의 만찬은 또 그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뒤돌아보게 해 줍니다. 그것은 계약으로써 우리의 살아있는 믿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의 만찬은 우리의 미래도 바라보게 해 줍니다. 바울은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26) 그러므로 주의 만찬은 예수께서 신실한 종들을 영원한 천국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재림하신다는 사실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라고 했으므로 주의 만찬은 것은 세상 끝날까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일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고린도전서 10:16,17) 그리스도인이 먹는 한 떡은 한 몸을 상기시켜 줍니다. 여기서 한 몸이란 나누어지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의 한 교회입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골로새서 1:18) 각각의 그리스도인이 많이 있지만 한 떡이 상징하는 한 교회에 연합된 것입니다.

주의 만찬에 대한 오해

주의 만찬과 관련된 몇 가지 잘못된 개념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화체설입니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정의한 화체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찬식에서 떡과 잔은 실제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과 신성이 함께한 몸과 피로 변한다. 떡이 주님의 몸으로 온전히 변화하고 포도주 또한 주님의 피로 온전히 변화한다.” 이렇게 해서 성찬식에서 떼는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실제 몸과 피로 변한다는 개념으로 발전했습니다. 화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마태복음 26:26-28에 나오는 예수께서 주의 만찬을 제정하시면서 하신 말씀을 그 주장의 근거로 듭니다.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여기서 논란이 되는 “이것은 내 몸이니라.” 그리고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하신 예수의 말씀은 문자 그대로 갈보리 십자가에서 달린 그의 실제 몸과 거기서 흘리신 실제 피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주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다음 말씀을 살펴 보십시오. “내가 문이니” (요한복음 10:9) “나는 포도나무요” (요한복음 15:5) 여기서 말씀하신 문과 포도나무는 문자 그대로 그가 문이요 포도나무라는 뜻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유사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는 내 몸이니라.” 하셨을 때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육체로 계시면서 하신 비유임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하신 말씀도 그 말씀을 하실 때 아직 그의 혈관에 피가 흐르고 있을 때이므로 그 잔이 문자 그대로 그의 피를 의미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당시 제자들이 예수께서 아직 육체로 계실 때이므로 그 말씀이 문자 그대로 그의 몸과 피라고 이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살펴본 대로 떡과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그리스도를 기념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기념이란 실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상징하는 다른 어떤 것입니다. 떡과 포도나무에서 난 것이 문자 그대로 주의 몸과 피였다면 제자들이 그의 실제 몸과 피를 먹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화체설 교리는 주의 만찬을 제정한 원래 목적에 맞지 않습니다.
화체설 이론과 관계되는 것 가운데 미사라는 이름의 희생제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제가 미사를 행할 때마다 예수의 희생제사가 반복된다는 개념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매번 반복된다는 이 개념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맞지 않습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히브리서 7:26-27) 예수의 희생제사가 온전한 것이었으므로 매번 되풀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이 주의 만찬을 받을 때 죄 용서를 받는다는 또 다른 이론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례전 개념인데 그 근거로 예수께서 하신 다음 말씀을 듭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8) 여기서 포도나무에서 난 것이 죄 사함을 가져다 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문법적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죄 사함”을 얻게 하는 것은 “피”이지 “잔”이 아닙니다. 죄의 용서는 그리스도의 피 흘림으로 나오는 것이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심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가?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만 그것이 예수의 죽음의 기념이고,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의 상징인 친교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다시 오실 것이라는 선포이고, 그리스도인에게만 그 떡이 한 몸 안에서 하나라는 상징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주의 만찬이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주의 만찬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제자들만이 참여해야 합니다.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태도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27-29) 이 말씀은 주의 만찬을 얼마나 진지한 태도로 참여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올바른 방법으로 주의 만찬에 참여하기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죽음에 우리의 마음을 집중해야 합니다. 만약 세상 물질적인 것에 마음을 뺏기면서 주의 만찬에 참여한다면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의례적으로 진지함이 결여된 채 그저 하나의 의식으로 만찬에 참여하는 경향이 너무 많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주의 만찬을 행하는 시기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사도행전 20:7) 이 구절에서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바울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기 보다는 주의 만찬을 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매주 첫날 곧 일요일에 이루어졌음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초대 교회 제자들이 매주 첫날 이런 방식으로 그들의 주님을 기념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모였음을 보여줍니다. 교회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비록 자신들의 믿음이 다른 학자와 다르다 할지라도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매주 첫날에 주의 만찬을 지켰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합니다. 이 기념식탁을 한 달에 한번 혹은 절기에 한번 기념하는 것은 최근에 생긴 일입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초기 제자들이 행한 방법대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을 진실로 사랑한다면 것처럼 매주 주의 만찬을 행하는 것을 짐으로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